2008년이 간다.
어쩌면 나에게 위기일 수 있었던 2008년..
오늘 2008년 12월 31일. 2008년을 되돌아본다.
1월
1월에는 피할 수 없는 의무인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던 달이다. 병역특례를 받기 위해서 수많은 병역특례 업체에 apply를 하고, 면접을 보고 뛰어다녔다. 이때는 온통 병역특례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2008년에 병역특례를 받지 못하면 여러가지로 꼬이기때문었다. 스트레스로 인하여 위장병에 걸려서 제대로 먹지못하고, 잠도 잘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에 나는 이례적으로 병역특례업체 4군데로부터 긍정적인 프로포즈를 받았다. 4군데 중 어느 곳을 가야할지 잠시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한 군데 업체를 결정하여 병역특례를 받았다.
그 후에, 항상 내게 좋은 멘토링을 해주시는 이형기 형님께서 역시나 좋은 기회를 주셨다. 이형기 형님께 늘 감사드릴따름이다. JAKorea 경제봉사단에서 대학생 창업과 관련하여 특강을 하는 제안을 하신 것이다. 너무나도 뜻밖이고 다소 부담되는 무대였지만, 차근차근 잘 준비하여 성공리에 강연을 마칠 수 있었다. 이 글을 빌어서 그날 강연을 함께하신 이해웅 형님, 이형기 형님, 그리고 JAKorea 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부족한 나의 강연을 경청해 준 JAKorea 학생들에게도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1월의 Tag : 병역특례 편입. JAKorea 강연.
2월
2월에는에는 병역특례를 위해 입사한 회사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았다. 입사한 회사에 나처럼 병역특례를 받은 사람들이 한 열 댓명 있었다. 대부분이 카이스트 출신이었고, 과학고 출신이었다. 과학고를 나오지 않는 사람은 나 뿐이었던 것 같다.
갓 입사한 회사에 적응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난 그때 분명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변명을하자면, 이미 회사에 존재하고 있던 끼리끼리 집단에 들어가기 어려웠던 것이고.. 당시를 회상해보면, 퇴근 후 나의 꿈에 더 다가가기위한 노력때문에 체력적/심리적으로 힘들었던 내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했던 것 같다.
나도 그렇고, 회사 사람들도 그렇고 서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것은 지금 2008년이 끝나는 시점에도 여전히 그 나비효과를 끼치고 있는 듯하다.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에 대한 거부감.. 2009년에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2월에는 많은 책을 읽었고, 회사에서는 겉돌고 있었으며, 체력적/심리적으로 상당히 힘들었던 달이었다.
2월의 Tag : 적응의 실패. 마음의 문.
3월
3월에는에는 오래전부터 나가고 싶었던 2008년 정보통신벤처창업경진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마침내게 세수하다가 떠오른 좋은 아이디어가있었고, 고려대학교에서 팀을 이루어 사업계획서 작성 작업을 하였다. 멋전 팀이었다. 세혁이형, 대걸이형, 그리고 나. 각각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서 서로가 최선을 다해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냈다 .3월에 쓴것은 1차 사업계획서. 최선을 다하여 만든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였고, 이후 이 사업계획서는 통과되었다. 1차에서 통과된 우리에게는 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예비창업교육을 수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4월에 우리는 1차 합겨자에게만 수여되는 정보통신부 주관의 예비창업교육을 수료하게된다.
3월에도 이렇게 나의 꿈에 좀 더 가까워지기위한 노력을 하였다. 이 때 같이 고생한 대걸이형과 세혁이 형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불경기 속에서도 당당히 금융업계에 취업하신 세혁이 형께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리고 싶다.
3월의 Tag : 정보통신벤처창업경진대회. 사업계획서.
4월
4월에는 정보통신부 주관의 예비창업교육을 수료하였다. 2005년부터 받고 싶었던 귀중한 교육이었다. 나는 회사에 무려 일주일 치의 연차를 내고 그 교육을 수료하였다.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교육이었다. 그 교육에서는, 내가 공과대학을 다니면서 배울 수 없었던 경영/경제의 전반적인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교육에 참가한 여러 사람들의 생각들을 듣고 토론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이후, 교육을 수료하고 회사에 돌아갔을 때는 사장님으로부터 한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말은 아직도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 "군인이면 군인답게 일해라."
만약 노조가 있었다면.. 참으로 위험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회사를 오래비워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에, 충분히 회사의 사주가 훈계성 발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교육을 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5월 초 마감인 2차 사업계획서를 최선을 다해 작성하였고 5월 6일 나의 생일날 2차 사업계획서를 무사히 제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2차 사업계획서는 통과하지 못하였다. 아무래도 나의 지금의 처지가 창업을 바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통과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이후에 다시한번 도전할 생각이다.
또, 4월에는 1월에 강연을 했었던 JAKorea로부터 또다시 좋은 제안을 받았었다. JAKorea에서 경제교육봉사의 일환으로 고등학생에게 창업과 관련된 교육을 한 학기에 거쳐서 하는데, 교육의 첫 강의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흥분되고 좋은 제안이었다. 4월에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미래의 주역이 될 고등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한 권의 책이 나비효과가 되어 이들의 미래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때문에, [7막7장]이라는 좋은 책을 선물하였다. 될 놈은 읽었겠지..? ^_^
4월의 Tag : 창업예비교육. JAKorea 경제봉사.
5월
5월. 2008년의 꽃피는 봄 5월을 나는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5월에 내가 오랬동안 꿈꿔오던 이상형의 짝을 만났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반했다는 말 밖에는 달리 그 순간을 표현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나는 그녀를 얻기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지금 그녀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반쪽이되었다.
5월에는 온통 그녀의 맘에 들기위한 노력뿐이었다. 그녀가 싸이월드에 써놓은 글들을 밤새 외우고,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해서 공부하였다. 공부하면 할 수록 그녀을 좋아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면서 말이다.
그녀가 아팠던 내 생일 날에는 그녀의 집앞에 그녀가 좋아한다는 에그타르트를 한 아름사서 꿀물과 함께 전해주었다. 그녀가 아프다니, 내 생일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 날,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고 한다.
그녀가 학교에서 밤 늦게끝나는 날에는, 학교 앞에 차를 끌고 깜짝 방문하여 놀래켜주었다. 그녀의 친구들에게 맛있는 간식을 사줘서, 친구들을 내 편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녀를 집에 차로 데려다주고는, 트렁크에서 장미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5월이 끝 부분으로 접어드려고 하는 날,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서로의 반쪽이 될 수 있었다.
너무나도 행복했던 5월. 나는 모든 것을 얻은 듯 행복했다.
5월의 Tag: 설렘. 사랑. 시작.
6월
6월에는 그녀와의 데이트와 특히나 열심히 했던 운동이 기억난다. 그녀는 내게 너무 특별했다. 이런 감정을 두고 사랑이라고 하는 것인지. 열심히 데이트하였다.
그리고, 6월에는 나의 육체적 절정기였다. 평소 웨이트트레이닝을 꾸준히하는 나는, 날씨가 더울때 운동이 특히 잘된다.
열심이 운동하고, 열심히 사랑하고...
그녀에게 잊지못한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었다.
6월 26일에 나는 훈련소에 입소해야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즐거운 데이트에 즐거워하는 그녀에게, 어떻게 이 사실을 말해야할까.. 많은 고민을 했었다.
6월 중순 어느날, 신촌의 어느 까페에서 훈련소 입소 사실을 고백하였다. 잘 다녀오라는 그녀의 말을 뒤로한채 6월 26일에 논산 훈련소에 입소한다.
입소전날인 6월 25일에는 일치감치 롯데월드에가서 입소 전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6월 26일일 오후 입소 전에 그녀와 통화를 했는데, 한 달 짜리 훈련이지만 울음을 참지못하는그녀의 목소리를 뒤로한채.
입소하였다.
1년 중 가장 더운 6월. 황산벌 논산.
6월의 Tag: 데이트. 훈련소. 논산.
7월
7월에는 논산 훈련소에있었다. 6월 26일에 입소하여 4주간의 훈련. 4주 후 다시 사회에 나갈 수 있다는 희망 만을 가지고 열심히 버텼다.
마치... 드래곤볼의 정신과 시간의 방에 있는 듯.. 시간이 좀 처럼 가지 않았다.
틈이 날때마다 집과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는 것과 답장을 받는 재미로 힘든 4주를 버틴 것 같다.
어찌나 탔는지, 까까머리 토인이 되어 퇴소하고, 다시 건강한 시민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 나의 환경으로 나는 돌아왔다.
7월의 Tag: 논산 훈련소
8월
8월. 8월에는 다시 돌아온 사회에 적응하는 기간이었다. 10시면 졸려서 아무것도 못하는 생활 습관도 고치고, 굳었던 머리도 풀어주고... 등등의 노력을 하였다.
보고싶었던 사람들도 만나고, 그녀와의 달콤한 데이트도 하고 8월을 보냈다.
아. 그리고 6월에 훈련소에 입소하기 전에 어느 창업경진대회에 사업계획서를 공모하였었는데, 그게 수상하였다고 연락이 왔다. 훈련이 끝나고 돌아오자마자 2차 사업계획서를 다듬었던 기억이 난다.
8월의 Tag: 퇴소. 사회에 적응.
9월
9월. 9월에는 내가 사랑하던 한 조직과의 결별이 이루어졌던 날이다. 난 그 조직이 성장하기 위해 헌신적이었다. 그 조직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사랑하였다. 하지만, 난 배신당했고 정치적인 압박을 받았으며 결국 그 조직을 떠났다.
그 조직에는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하며, 닮고싶고 결국에는 뛰어넘고 싶은 형님이 한분있었다. 그리고, 그 형과 이제 다신 보지 않기로했다. 나에게 준 2008년의 상처를 잊지 않기록 다짐하며, 난 떠났다.
결국, 엄한데서 고생할 필요 없었다. 그 조직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내가 왜 관련도 없는 K고등학교 라인에서 상처받아야했을까? 나는 다시 고려대학교의 품으로 돌아갔다.
9월의 Tag: 배신. 상처.
10월
10월. 10월에는 그 동안 뒷걸을 친 나를 다잡고 다시 열심히 달리기 시작한 달이다. 9월의 그 일을 겪고 난 후로, 그 동안 발전없이 정지해 있던 나를 다시 채찍질하고 달리기 시작한 달.
회사를 퇴근한 후로, 나는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제안하고 공부하고... 나의 꿈에 더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들을 하였다. 잠도 잘 안자기 시작하고, 뒤처진 나를 질책하 듯이 나를 더 몰아쳤다. 그 결과들이 이제 점점 나오고 있다. 2009년에 그 노력의 수확을 확인해야지.
그리고, 10월 부터는 CSR 관련 모임에 참석하게되었다. 이 역시 이형기 형님이 좋은 기회를 주신 덕분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모임이었다. 평소에는 얻지 못했던 많은 의미있는 키워드들과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엔 기업경영도 착하게 해야한다. 정파의 길을 걸어야한다. 당장 급하다고해서 사파의 길로 접어들어서 검은 유혹에 빠져서는 안된다.
CSR 모임과의 만남. 하늘은 나에게 또 어떤 기회를 주신것일까.
10월의 Tag: 계발. CSR
11월
11월에는 CSR 모임과 지만이 형과의 좋은 만남이 기억난다. 다시 참석한 CSR모임에서 평소 얻을 수 없었던 키워드들과 영감을 얻었고, IT에서도 CSR의 좋은 사례가 얼마든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발표하는 좋은 시간되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이날 국내 CSR 분야 저명한 인사가 내게 보인 어떤 제스처로 인해서, 내가 엄청난 자극을 받고 불타올랐던 시간이었다(나중에 따로 포스팅해야지..).
저녁에 가끔 닭갈비 집에서 식사를 하던 지만이 형께서, 매너리즘에 빠지려고하는 내게 마침 좋은 기회를 주셨다. 이 글에 구체적인 언급은 할 수 없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지만이 형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11월의 Tag: CSR. 지만이형.
12월
12월에는 나의 꿈에 다가서기 위한 노력때문에 많이 바빳던 달이었다.
역시나 Deadline들이 몰려있는 12월..
또한, 각종 송년회에도 참석하고 연말결산도하고... 이래저레 바빴다.
그리고, 올해 크리스마스는 그녀와 함께였기 때문에 너무나도 행복했다.
12월의 Tag: Deadline. 크리스마스.
아이 힘들어라.
2008년은 병역만 해결되어라~ 라고 기도했었는데.
2008년에도 많은 일들이었었고, 또 다른 욕심들도 생긴다.
2009년.
2009년에는 좀 더 내 꿈에 다가서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모두들 해피 뉴 이어~!
Posted by Easter